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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손님이 된 것 같은 코펜하겐 '릴리 베이커리' 본문

공간 기록/카페, 향이 짙은 공간

초대받은 손님이 된 것 같은 코펜하겐 '릴리 베이커리'

Ljuhyeon 2023. 11. 7. 07:30

 

코펜하겐에서의 2일 차 오전 10시, 숙소에서는 조금 멀리 떨어진 릴리 베이커리(lille bakery)로 향했다. 8월이었지만 북유럽이라 그런가 꽤 선선한 초가을 날씨였다. 거의 종점 같은 버스정류장에 내리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내리는 모두가 릴리 베이커리로 가는 사람들이다.
 
이미 꽤 긴 줄이 있었다. 하지만 맑은 날씨와 온 몸을 휘감은 빵냄새는 기다림 조차 즐겁게 한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동안 이곳이 마치 어느 농장의 곳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애써 꾸미지 않고 좋아하는 것,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 인테리어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순간 모두를 초대받은 손님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달콤한 빵 주변을 맴도는 벌들의 모습을 익숙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보며 이곳의 주인은 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문한 빵을 받아 들었을 때, 이 빠진 접시가 괜히 마음에 들었다. 전에 온 적 없지만 모든 것이 처음 그대로 인 것 같았다.

언젠가 유럽의 빵은 달지 않고 더 맛있다는 말을 들었다. 함께 온 내 짝이 이야기해 줬을 거다. 사실 한국의 빵 맛에 길들여진 나는 그 순간에 더 맛있는 빵집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현시점에서 가장 맛이 그리운 빵집은 릴리 베이커리이다.
 
다시 가기 어려울걸 알아서 그런 건지 빵 본연의 맛이 그리워진 것인지 조금은 헷갈리지만 적어도 여기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내가 주문한 필터 커피 아이스

아, 그리고 특별하지 않던 필터 커피도 생각난다. 즉석에서 내려주는 커피가 아니라 그냥 내려진 커피를 작은 유리컵에 담아주는 그 가벼움이 좋았다.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맛있는 빵과 커피를 마셨으니 아마 기억에 꽤 오래 자리잡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