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일기
[쿠알라룸푸르] 카우치서핑, 처음 만난 이들의 침대에서 2박3일 본문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가 아닌 아무것도 아닌듯한 동네에서 발견하는 작은 매력 덕분이었다. 저렴한 비용에 장기 여행을 하고 싶었던 나는 전역 후 모아둔 돈 일부를 가지고 동남아 일주를 떠났다.
에어비앤비를 좋아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숙소가 많이 올라와있던 부킹닷컴, 아고다, 익스피디아, 카우치서핑 등의 숙박 플랫폼을 이용했고, 최저가 숙소 중에서도 평점과 후기가 나쁘지 않은 곳들을 찾으며 1박에 2000원 ~ 5000원 정도의 선에서 해결하곤 했다.
숙박 플랫폼 중에서도 카우치서핑은 여행자들이 호스트가 수락하면 무료로 호스트집의 쇼파 혹은 침대에서 숙박이 가능하였고 왠지 현지인의 주거 공간에 머물러 보고 싶어 카우치서핑을 통해 호스트들에게 메시지를 돌렸다. 몇 번의 거절 끝에 공항을 벗어나기 전 아리프(Arif)라는 호스트 친구가 수락해 주었고 그가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일을 벌리고 나니 막상 조금 두려웠다. 이들의 언어, 문화, 국가 심지어 쿠알라룸푸르라는 도시에 대한건 이름 말고 아무것도 몰랐다. (나름 뭐 비유하자면 서울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뜬금없이 광명으로 가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도착한 호스트 친구의 공간. 일반 가정집이거나 원룸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자기네 학교 기숙사였다.(ㅋㅋㅋㅋㅋ)
뭐 심지어 40평 정도 되는 2개의 집에 총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잠시 한 친구가 고향에 가게 되어 나에게 자리를 하나 내어줄 수 있었다고 했다.
해질 무렵 도착한 곳이 평범한 가정집도 아니고 대학교 기숙사라니...어질어질 했다.
말레이시아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영어권 국가처럼 다들 영어를 잘하여 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그래서 다들 너무 물어보는 것이 많았고 인원까지 많다 보니 비슷한 질문의 답변을 하느라 지쳐버렸다.
더위와 피곤으로 쩔어있던 나는 바로 자고 싶었지만 이슬람 문화권인 이곳이 하필 라마단 기간이라 새벽 식사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친구들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고 한국 포장마차 같은 감성의 식당에 가서 함께 식사를 했다.(아마도 이때가 새벽 2시...?)
"아, 이런 삶도 있구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숙소, 몰랐던 문화 그리고 한류의 영향력(?) 등 사실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왔던 상식에서 조금씩 벗어나던 상황이라 충격적이면서도 다른 공간에서 이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2일 차 오전, 너무도 고요한 아침에 더위에 일어났다.
전 날 북적이던 방은 수업을 들으러 간 친구들과 잠을 계속 이어가던 친구들로 적막이 흘렀고, 갑자기 눈에 들어온 이들의 차분한 공간을 필름 사진으로 기록했다.
벽면의 드림캐쳐와 각자 개성이 담긴 캐비닛. 전형적인 내 또래의 대학생들 모습이었고 오히려 자신들만의 낭만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사는 공간의 첫 모습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무르익은 느낌을 좋아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도 좋긴하지만 사용자가 자신들의 편의에 맞게 펼쳐둔 여러 흔적들을 보면 생기가 느껴진다.
여기 친구들의 공간 또한 특별함은 없었지만 생기가 느껴졌고 여러 라이프스타일이 뒤섞여 다채롭게 다가왔다.
2일 차 저녁. 낮에 여행도 함께 다니며 그 사이 정이 들었던 친구들에게 내 여행 방명록 작성을 해달라 이야기했다.
나에 관한 것이든 자신에 관한 것이든 상관없으니 너희들의 흔적을 남겨달라고 말이다.
모두가 진지한 태도로 적어주었고, 기록해 둔 노트는 이따금씩 펼쳐보며 힘을 얻고 있다.
3일 차 오전, 얼마든 더 있어도 상관없다는 친구들이었지만 다음 여행을 위해 국가 이동을 해야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떠나왔다.
정신없던 1일차 저녁의 만남과 고요했던 2일차 오전의 공기.
장면들을 다시 꺼내어보니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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